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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내가 헛되이 보낸 하루는
어제 죽은 이가 그토록 살고 싶어 했던 내일이다.
그렇다.
어제 하늘나라로 간 사람은
내가 헛되이 소비한 오늘이란 하루를 얼마나 애타게 바랬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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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일 내가 그의 자리에 있었다면
나 역시 오늘이라는 내일을 간절히 간절히 바랬을 것이다.
그럼에도 헛되이 보낸 오늘 하루.
물론 매일을 알차게만 보내기도 쉽지 않다.
때로는 친구를 만나고, 영화를 보고, 낮잠을 흐드러지게 자기도 한다.
그러지 않고야 어찌 살아가겠는가?
그러나 그런 날도 당연히 의미 있는 날이다.
그런 날이 아닌 헛되이 보낸 시간이 문제다.
그러면 헛되이 보낸 시간은 어떤 시간일까?
아무런 목적이 없는 시간이다.
쉬운 말로 킬링타임으로만 보낸 시간이다.
휴식의 차원에서 그럴 수는 있으나
즐거움으로 그렇게 시간을 보낸다면 그건 헛되이 보낸 시간이다.
무의미하게 유튜브를 탐닉하고
말초신경을 자극하는 영상을 찾아 다니고
제대로 된 지식과 주관도 없이
정치와 종교 문제로 다투는 시간들.
게임을 보느라 어린 자녀와 놀아 주지 않고
지나가는 미인을 보느라 자기 옆의 아내를 보지 않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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즉 자신의 인생과 자신의 앞에 있는 존재에 대해 무감각한 것.
이것이 헛되이 보낸 시간이다.
인생에 집중하고 존재에 집중하는 것.
이것이 알차게 보내는 시간이다.
하루를 소중히 보내는 시간이다.
시간은 소비하는 데 쓰이는 것이 아니라
창조하는 데 쓰여야 한다.
한정된 자원은 계획을 가지고 사용해야 한다.
우리 시간도 한정돼 있다.
때문에 계획을 가지고 방향을 가지고 사용해야 한다.
계획과 방향이 없으면
자기 앞의 존재에 무심하게 된다.
계획과 방향이 서 있을 때
시간과 공간은 생명을 지니게 된다.
나에게 의미 있는 존재로 다가오게 된다.
의미 있는 존재로 마주할 때
나는 그 대상을 소중하게 여기게 된다.
의미가 이데아의 세계에서 내려 오기를 기대하기 힘들다.
그렇다고 의미를 내가 만들 수도 없다.
의미는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발견되어 지는 것이고 찾아지는 것이다.
계획과 방향이 섰을 때
의미는 발견 된다.
내가 계획과 방향성을 가지고 있을 때 찾아지기에
의미는 하늘에서 내려오는 것이 아니라.
하늘에서 내려오는 것이라면
나의 계획이나 방향성의 유무와는 상관없이 발견되기 때문이다.
내가 계획과 방향성을 가지고 있을 때 발견되어지기에
의미는 내가 만드는 것이 아니다.
의미가 내가 만드는 것, 내가 정의하는 것이라면
이 세상에 허무한 인생은 없을 것이다.
누군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가 나에게로 와서 곷이 되었듯,
계획과 방향성을 가질 때 시간과 공간은 의미를 가지게 된다.
그것이 하루의 소중함을 얻는 비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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