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직 노고를 이로움으로 보상해주지 않아도 힘껏 하고, 가까이해보았자 영예로울 만한 것이 없는데도 자기를 굽혀 나아가는 사람이라야 배움이 참되고 사모함이 거짓되지 않다고 말할 수가 있다.' - 정약용 - 다산어록청상 중
이런 사람이야 말로 진실되게 학문을 하는 사람이라 할 수 있다는 정약용 선생의 말이다.
요즘의 공부는 무언가 대가를 원하는 공부가 주를 이룬다. 상아탑이라 불렸던 대학도 이제는 직업학교가 되어 버렸다. 순수하게 학문을 연구하고 공부가 하고 싶어 대학에 가는 게 아니라 좋은 직장을 얻기 위해 대학에 가는 세상이 돼버렸다.
직장을 얻는 자체는 아무 문제가 없다. 그러나 학문하는 목적이 좋은 직업을 얻기 위해서가 가장 크다고 한다면 뭔가 개운치가 않다.
우리는 목적 없이 살아가기는 힘들다. 가정을 이루는 것도 행복을 이루기 위해서이고, 직업을 갖는 것도 가족을 행복하게 하기 위해서이다. 그런데 이제는 직업을 갖는 이유는 돈벌이나 자신의 성공을 위한 목적이 주를 이루고 있다.
사랑을 하는 데 상대방의 집 안이 좋아서 사귄다고 하면 진정한 사랑이라 할 수 없듯이 학문도 학문의 연구와 발전 자체를 위함이 아니라면 뭔가 순수하지 못한 느낌이 든다.
순수한 사람은 걸러 생각하지 않는다. 그래서 이로움이 있나 없나를 따지지 않고 일한다. 나에게 득이 되는 사람인지 아닌지를 따지지 않고 사람을 대한다.
이것이 그리 힘든 일은 아닐터인데 이 정도가 되면 도학자라 할 수 있다고 정약용 선생이 말할 정도이니 실은 예나 지금이나 쉬운 일이 아닌가 보다.
그런 사람은 칭찬받지 못하고 어리숙하다 하고 이용당하기 쉽다고 한다. 그런 사람이 대접받고 높임 받는 사회가 좋은 사회일 텐데 그런 사람이 높임을 받는 시대가 있었다는 말을 들어보지도 못했다.
사회와 경제가 발전할수록 그렇게 순수한 사람은 뒷전으로 밀리고 업신여겨지기까지 한다. 착하게 사는 게 잘못은 아닌데 말이다. 능력이 좋은 사람보다 착한 사람이 더 높임을 받아야 하지 않겠는가?
그래야 세상이 사람 살만한 곳이 되지 않겠는가? 능력위주 사회의 폐단에 대해 열띠게 말하면서도 사람을 고를 땐 능력을 보지 인성을 보지도 않는다.
착한 사람이 대접받고 높임을 받는 사회가 되면 좋겠다. 그것이 유교에서 말하는 참된 도학의 사회이고 민주사회가 아닐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