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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자가 된 도둑

by 푸른 세상을 꿈꾸는 2022. 2.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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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도둑이 있었다. 어느 날 도둑은 남의 집에 들어가 물건을 훔치고 도망가다 어느 마을에 이르렀다. 날이 밝아 올 무렵이고 피곤도 하여 마을 어귀의 나무 아래에 앉아서 쉬기로 했다.

 

마침 동네 아낙네 한 명이 지나가다 조용히 앉아 있는 도둑을 보고는 틀림없이 수행 중인 성자라 생각했다. 도둑이 나무 아래에 조용히 앉아 있는 모습이 꼭 성자와 같이 보였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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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부인은 조용히 도둑에게 다가와 갓 짜낸 우유를 그의 발 앞에 두고는 절을 하고 갔다. 마침 배도 고팠던 터라 도둑은 우유를 맛있게 먹었다. 그리고 가만히 앉아 있는데 우유가 생겼으니 횡재했다고 생각했다.

 

 

마을 아낙은 아낙대로 마을에 들어가 성자가 나무 아래에서 기도하고 있다고 소문을 내었다. 그러자 마을 사람들이 모두 도둑에게로 몰려왔다. 정작 도둑은 당황했지만 도망갈 수도 없었다. 마을 사람들은 도둑에게 절을 하고 그의 발 앞에 빵과 음식들을 놓고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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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만히 앉아 있는데 먹을 것이 생기는 것이 도둑은 마냥 신기했다. 그리고 곰곰이 생각해 보니 성자 인체 하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위험하게 도둑질을 안 해도 먹을 것이 저절로 생기니 도둑질보다 훨씬 좋지 않은가?

 

그날로 도둑은 제대로 성자 인체 하며 지냈다. 그리고 마을 사람들은 그를 계속 성자로 생각하고 매일 음식을 가져다주고 절을 하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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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둑은 도둑대로 나름 정성을 다했다. 자세가 흐트러지면 들통이 날까 봐 성자의 자세를 유지하기 위해 무진 애를 써야만 했다. 정자세로 오랜 시간을 기도하듯 움직이지 않고 있기가 얼마나 힘들 것인가? 그럼에도 도둑은 꾹 참고 자세를 유지하며 얼굴 표정을 온화하게 하려고 노력했다.

 

그렇게 몇 년이 흘렀다. 그러자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도둑의 얼굴에선 빛이 났고 몸에서는 성자의 향기가 났다. 그는 정말로 성자가 된 것이다.

 


 

무언가에 천성적으로 재능을 가지고 태어난 사람에겐 그 일을 하는 것이 쉽다. 그러나 그런 재능을 가지고 태어나지 못한 사람에게는 매우 힘든 일이다.

 

그렇게 본다면 본디 악한 성격을 가지고 태어난 사람은 착한 일을 하는 것이 매우 힘들 것이다. 태어나길 그렇게 태어났으니 그에게 나쁜 짓을 했다고 벌할 수 있겠는가? 비유로 병아리 보고 왜 독수리가 되지 못했냐고 벌을 줄 수는 없다.

 

그렇다고 악한 성품 그대로 살아가는 게 옳은 일은 아니다. 허약 체질이면 운동을 해서 건강 체질로 바꾸려 하고, 학업 능력이 떨어지면 더 노력해서 공부해야 하는 것 아닌가? 자신의 부족한 부분을 보강해서 좀 더 성공적으로 살아가려는 노력이 있어야 한다.

 

사람은 누구나 약점이 있다. 종류만 다를 뿐이다. 누구는 신체적 약점을 가지고 태어나고, 누구는 재능 면에서 약점을 가지고 태어나고 누구는 성품의 약점을 가지고 태어난다. 그렇다고 그대로 살지는 않는다. 그것을 극복해서 좀 더 나아지려고 노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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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노력을 하면서 타고 난 성품에 대해서는 노력을 하지 않고 하늘이 이렇게 만들었으니 어쩔 수 없다고 할 수는 없는 것이다. 성품도 다른 약점과 마찬가지로 노력해서 좋은 성품으로 만들어야 한다. DNA 탓을 하면 안 된다.

 

인간의 가장 큰 힘이 무엇인가? 그건 바로 선택할 수 있다는 것 아니겠는가? 악한 길로도, 선한 길로도 선택할 수 있는 능력이 인간에게는 있다.

 

 

예화로 든 도둑처럼 성자가 되려 노력하다 보면 정말로 성자가 되거나 그 근처는 가게 될 것이다. 그러한 노력은 가식이 아니다. 아니 가식이어도 괜찮다. 그런 노력을 지속하기만 한다면 말이다.

 

속으론 어떨지 몰라도 겉으로는 가식적이나마 선한 인간의 모습으로 보이려 노력한다면 그 시간만큼은 선한 사람인 것이다. 그렇게 인생을 채운다면 결과적으로 그는 선한 사람으로 산 것이다. 위에 말한 도둑이 그렇게 살았다.

 

선한 인간으로 사는 것이 힘들 수 있다. 손해 보고 피해를 입을 수 있다. 그러나 선한 것이 악한 것보다 더 좋은 것임은 두말할 필요조차 없다. 그렇다면 우리는 선하게 살아야 하지 않겠는가? 현실의 이익으로 인해 더 좋은 것을 멀리해야겠는가?

 

비록 힘들지라도, 손해를 볼지라도 선이 악보다 더 좋은 것이므로 우리는 선을 추구해야 한다. 이것은 분명하다. 그래서 손해를 감수하는 사람, 희생을 감수하는 사람이 위대한 사람이다. 희생 없이 선은 이루어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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