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숨이 붙어 있는 한, 또 인간이 서로 사귀고 있는 한, 인간성을 존중하도록 하자. 우리는 누구에게나 공포의 대상이 되어서는 안 되고, 위험한 존재가 되어서도 안 된다.
또 위해나 손실, 욕설, 조소를 경멸하고, 동시에 숭고한 정신을 가지고 길지 않은 불행을 참고 견디지 않으면 안 된다.
- 분노에 대하여, 세네카 -
위 글은 로마 시대 정치가이자 스토아 철학의 대가로 알려져 있는 세네카의 말이다. '분노에 대하여'라는 글에 쓴 글이다.
- 저자
- 세네카
- 출판
- 아날로그(글담)
- 출판일
- 2020.12.15
그렇다. 우리는 같은 인간이다.
'같은'이라는 말에는 동등하다는 뜻이 담겨 있다.
같은 것이 어떻게 차등이 있을 수 있겠는가? 같은 것은 같은 것이다. 차별이 있을 수 없다. 그렇기에 인간성을 존중해야 한다.
물론 각자의 위치에 따라, 하는 일에 따라 차등은 있다. 그러나 그 차등은 정확히 말하면 높고 낮음의 차등이 아니라 책임의 차등일 뿐이다.
높은 위치의 사람과 낮은 위치의 사람, 좀 더 중요한 일을 하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의 차등은 높은 위치와 중요한 일을 하는 사람이 가지고 있는 책임이 좀 더 크다는 것이지 그 사람들이 좀 더 우월한 사람이라는 것이 아닌 것이다.
즉 책임의 범위가 더 크다는 것이다. 그런 만큼 높은 위치의 사람과 중요한 일을 하는 사람은 더 큰 책임 의식을 가져야 한다. 그들이 일을 잘못하면 그 피해는 그런 위치가 아닌 사람들이 만들어 내는 피해보다 훨씬 크기 때문이다.
따라서 가정을 이끄는 가장은 다른 가족보다 더 우월한 인간이 아니라 가족을 위해 더 큰 책임이 있고 그 책임을 완수하기 위해 희생해야 하는 사람이다.
마찬가지로 국가를 운영하는 사람들은 그렇지 않은 일반 국민보다 더 우월한 사람이 아니라 더 큰 책임을 가진 사람들이고 더 큰 희생을 해야 하는 사람들이다.
책임을 완수하려면 겸손해야 한다. 교만해서는 책임을 완수할 수 없다. 교만한 사람이 일을 하면 자신의 영광을 위해 일을 하기 때문이다. 자기 자신을 위해 일을 하는 데 타인을 위한 책임감이 있을 수 없다.
책임을 권한으로 인식하는 순간, 그 사람의 타락은 시작되고 그의 영향 아래 있는 사람들에게는 고통이 시작된다.
만약 누군가 사회를 위해서, 국가를 위해서 일을 한다고 하면서 교만한 기색이 보인다면 그는 분명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것이다.
교만한 지 않은 지는 어떻게 알아볼 수 있을까? 의외로 간단하다. 타인의 말을 귀담아듣는지, 타인의 아픔에 공감하는 지를 보면 된다.
그렇지 않은 사람이 사회를 위해, 국가를 위해 열심히 일을 하고 희생을 하리라 기대하는 것은 자기 스스로 생각이 없음을 나타내는 것일 뿐이다.
- 저자
- 주제 사라마구
- 출판
- 해냄출판사
- 출판일
- 2022.10.20
주제 사마라구의 대표작으로 '눈먼 자들의 도시'가 있다. 영화로도 만들어진 명작이다.
이 작품에 보면 어느 날 갑자기 도시에 눈이 머는 바이러스가 퍼지면서 모든 사람들의 눈이 멀게 된다. 그러나 한 사람 오직 안과 의사의 아내만이 멀쩡했다.
눈먼 자들로 가득한 세상은 과연 어떠할까? 비록 소설이지만 만약 눈이 머는 바이러스가 퍼진다면 충분히 일어 남직한 일들을 작가는 세밀하게 묘사해 놓았다.
소설에 나오는 인간 군상들 중에 같이 눈이 멀었음에도 총을 가지고 있기에 폭력을 휘두르는 자가 있다. 이 얼마나 불쌍한 인간인가? 자신이 불쌍하면서 같은 불쌍한 사람들을 괴롭히다니... 그의 영혼이야말로 가장 불쌍한 영혼일 것이다.
더 기가 찬 것은 그에게 빌붙어 정신 못 차리는 인간들이다. 눈이 멀어 고통 중에 있음에도 총 한 자루에 빌붙어 떡고물이라도 받아먹으려 하면서 타인에게는 온갖 폭력을 휘두르는 불쌍한 군상들의 모습이다.
같은 조건에서 좀 더 유리한 것을 가지게 되었다면 그것으로 타인에 대한 책임이 생겼다는 것이다. 이것을 책임이 아니라 권한이 생긴 것으로 생각한다면 그 사회의 불행이 시작된다.
근대 이후 인류의 역사는 권한을 책임으로 바꾸려는 대중들과 책임을 권한으로 가지려는 고위층과의 싸움의 역사가 아닐까?
결국 더 이상보다 못한 눈이 멀쩡한 의사 아내의 지휘 아래 사람들은 그들의 폭력을 그들에게 되돌려 준다.
그리고 갇혀 있던 수용소를 탈출한 그들에게 펼쳐진 세상은 온통 눈먼 자들의 혼란한 세상이었다. 같은 처지에 협력을 하는 것이 아니라 원시적 본능에 따라 살고 있는 불쌍한 인간 세상이었다.
그러나 얼마 뒤 갑자기 바이러스가 소멸해 버렸다. 그리고 사람들이 시력을 되찾게 된다. 과연 그들은 눈을 뜨게 되었을 때 눈이 멀었던 시간들을 어떻게 기억하게 될까?
우리는 지금 21 세기를 살고 있다. 단군 이래 가장 번영한 시대를 살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과연 똑바로 살고 있는 것일까? 과연 우리는 멀쩡히 눈을 뜨고 살고 있는 것일까?
이 번영의 시대를 지속하고 발전시킬 힘이 우리에게 있는가? 그런 사람을 보는 눈이 우리에게 있는가? 혹시 엉뚱한 사람을 그런 사람이라고 착각하고 있지는 않는가?
혹시 총 한 자루에 기생하며 살고 있거나 또는 그런 자들을 올바로 보지 못하고 속으며 살고 있지는 않은가? 혹시 잘못된 프레임에 갇혀 살고 있지는 않는가?
책임이 권한이 되어버린 세상이다. 진실을 보기도 진실을 말하기도 힘든 세상이다. 그렇기에 더 눈을 부릅뜨고 살아야 하는 세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