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글

책임과 권한, 눈을 뜨자

by 푸른 세상을 꿈꾸는 2023. 3. 6.
반응형
우리가 숨이 붙어 있는 한, 또 인간이 서로 사귀고 있는 한, 인간성을 존중하도록 하자. 우리는 누구에게나 공포의 대상이 되어서는 안 되고, 위험한 존재가 되어서도 안 된다.
또 위해나 손실, 욕설, 조소를 경멸하고, 동시에 숭고한 정신을 가지고 길지 않은 불행을 참고 견디지 않으면 안 된다.

- 분노에 대하여, 세네카 -

 

위 글은 로마 시대 정치가이자 스토아 철학의 대가로 알려져 있는 세네카의 말이다. '분노에 대하여'라는 글에 쓴 글이다.

 

 
어떻게 분노를 다스릴 것인가?
어떻게 분노를 다스릴 것인가? 어떻게 정신의 자유를 얻을 것인가? 어떻게 나이 들 것인가? 어떻게 죽음을 맞이할 것인가? 진실된 우정은 어떻게 쌓을 수 있으며, 열린 마음을 유지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때때로 사람들은 먹고사는 문제를 벗어나 근본적으로 더 나은 삶을 위한 질문을 던질 때가 있다. 그렇다면 이런 질문에 대한 답은 어디서 구할 수 있을까? 아날로그 아르고스 시리즈는 그 답을 고대 철학에서 찾는다. 이 시리즈는 프린스턴대학교 출판부가 기획하고 고전 철학의 저명한 학자들이 세네카, 키케로 같은 고대 철학자의 삶과 글에서 찾아낸 지혜를 엮은 〈현대 독자를 위한 고대의 지혜 시리즈〉를 우리말로 옮긴 것으로, 독자들은 이 책을 통해 2,000년이 흘러도 여전히 유의미한 인생의 기술을 만날 수 있다. 《어떻게 분노를 다스릴 것인가?》는 아날로그 아르고스 시리즈의 첫 책이다. 칼리굴라와 네로 치하에서 분노가 어떻게 개인과 사회를 위험에 빠뜨리고 파멸시키는지를 지켜본 세네카의 《화에 대하여》를 발췌 번역하고, 현대 독자들이 이 책을 어떻게 읽어야 할지 방향성을 제시하며 친절한 해설을 덧붙였다. 장기간 지속되고 있는 코로나 시대, 우울을 넘어 분노 사회로 향해가는 지금이야말로 우리가 고대 로마 철학자의 말에 귀를 기울일 때가 아닐까?
저자
세네카
출판
아날로그(글담)
출판일
2020.12.15

 

 

그렇다. 우리는 같은 인간이다.

 

'같은'이라는 말에는 동등하다는 뜻이 담겨 있다.

같은 것이 어떻게 차등이 있을 수 있겠는가? 같은 것은 같은 것이다. 차별이 있을 수 없다. 그렇기에 인간성을 존중해야 한다.

 

물론 각자의 위치에 따라, 하는 일에 따라 차등은 있다. 그러나 그 차등은 정확히 말하면 높고 낮음의 차등이 아니라 책임의 차등일 뿐이다.

 

높은 위치의 사람과 낮은 위치의 사람, 좀 더 중요한 일을 하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의 차등은 높은 위치와 중요한 일을 하는 사람이 가지고 있는 책임이 좀 더 크다는 것이지 그 사람들이 좀 더 우월한 사람이라는 것이 아닌 것이다.

 

즉 책임의 범위가 더 크다는 것이다. 그런 만큼 높은 위치의 사람과 중요한 일을 하는 사람은 더 큰 책임 의식을 가져야 한다. 그들이 일을 잘못하면 그 피해는 그런 위치가 아닌 사람들이 만들어 내는 피해보다 훨씬 크기 때문이다.

 

 

 

 

따라서 가정을 이끄는 가장은 다른 가족보다 더 우월한 인간이 아니라 가족을 위해 더 큰 책임이 있고 그 책임을 완수하기 위해 희생해야 하는 사람이다.

 

마찬가지로 국가를 운영하는 사람들은 그렇지 않은 일반 국민보다 더 우월한 사람이 아니라 더 큰 책임을 가진 사람들이고 더 큰 희생을 해야 하는 사람들이다.

 

책임을 완수하려면 겸손해야 한다. 교만해서는 책임을 완수할 수 없다. 교만한 사람이 일을 하면 자신의 영광을 위해 일을 하기 때문이다. 자기 자신을 위해 일을 하는 데 타인을 위한 책임감이 있을 수 없다.

 

책임을 권한으로 인식하는 순간, 그 사람의 타락은 시작되고 그의 영향 아래 있는 사람들에게는 고통이 시작된다.

 

만약 누군가 사회를 위해서, 국가를 위해서 일을 한다고 하면서 교만한 기색이 보인다면 그는 분명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것이다.

 

교만한 지 않은 지는 어떻게 알아볼 수 있을까? 의외로 간단하다. 타인의 말을 귀담아듣는지, 타인의 아픔에 공감하는 지를 보면 된다.

 

그렇지 않은 사람이 사회를 위해, 국가를 위해 열심히 일을 하고 희생을 하리라 기대하는 것은 자기 스스로 생각이 없음을 나타내는 것일 뿐이다.

 

 

 
눈먼 자들의 도시(탄생 100주년 기념 스페셜 에디션)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세계적인 거장 주제 사라마구의 탄생 10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그의 대표작 『눈먼 자들의 도시』가 스페셜 에디션으로 출간되었다. 2008년에 개봉하여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동명 영화의 원작으로도 유명한 이 작품은 국내에서 1998년에 첫 출간되어 2022년 지금에 이르기까지 24년이 흐르는 동안 쇄를 거듭하며 100쇄 이상을 찍기도 했다. 주제 사라마구 탄생 100주년 기념 스페셜 에디션은 많은 독자들이 요청해왔던 초판 버전의 표지로 리뉴얼하여 새롭게 단장했다. 『눈먼 자들의 도시』는 주제 사라마구의 이름을 널리 알려준 대표적인 작품으로, 한 도시 전체에 ‘실명’이라는 전염병이 퍼지며 이야기가 시작된다. 이 소설은 시간적 공간적 배경이 확실하지 않으며, 등장하는 인물들의 이름 또한 따로 없는 것이 특징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이름이 아니라 ‘눈이 멀었다’는 사실 그 자체다. 작품 속의 인간들은 물질적 소유에 눈이 멀었을 뿐만 아니라 그 소유를 위해 자신의 인간성조차 잃어버린 장님들인 것이다. 수용소에 강제 격리되어 각자의 이익을 챙기는 눈먼 사람들, 이들에게 무차별하게 총격을 가하는 군인들의 폭력, 전염을 막기 위해 수용 조치를 내린 냉소적인 정치인, 범죄 집단을 방불케 하는 폭도들이 등장한다. 이 소설은 우리가 가지고 있는 것을 잃었을 때에야 가지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깨닫게 된다는 사실을 날카롭게 풍자한다. 그러나 이 소설에 현대 사회의 어두운 면만 있지는 않다. 처음으로 눈이 멀어 수용소에 갇히는 인물들은 함께 서로의 고통을 나누고, 의지하며 도와가는 진정한 인간의 모습을 보여주는데, 사라마구는 이들의 모습에서 인간이 살아가는 본질적인 이유를 제시하고 있다. 한 도시에 갑자기 눈앞이 뿌옇게 안 보이는 `실명’ 전염병이 퍼진다. 첫번째 희생자는 신호가 바뀌기를 기다리며 차를 운전하던 사람. 그는 안과 의사에게 가봤지만, 의사 역시 원인을 파악하지 못하고, 그 자신도 그만 눈이 멀어버린다. 이 전염병은 사회 전체로 퍼져나간다. 정부 당국은 눈먼 자들을 모아 이전에 정신병원으로 쓰이던 건물에 강제로 수용해 놓고 무장한 군인들에게 감시할 것을 명령하며, 탈출하려는 자는 사살해도 좋다고 말하는데…….
저자
주제 사라마구
출판
해냄출판사
출판일
2022.10.20

 

 

주제 사마라구의 대표작으로 '눈먼 자들의 도시'가 있다. 영화로도 만들어진 명작이다.

 

이 작품에 보면 어느 날 갑자기 도시에 눈이 머는 바이러스가 퍼지면서 모든 사람들의 눈이 멀게 된다. 그러나 한 사람 오직 안과 의사의 아내만이 멀쩡했다.

 

눈먼 자들로 가득한 세상은 과연 어떠할까? 비록 소설이지만 만약 눈이 머는 바이러스가 퍼진다면 충분히 일어 남직한 일들을 작가는 세밀하게 묘사해 놓았다.

 

소설에 나오는 인간 군상들 중에 같이 눈이 멀었음에도 총을 가지고 있기에 폭력을 휘두르는 자가 있다. 이 얼마나 불쌍한 인간인가? 자신이 불쌍하면서 같은 불쌍한 사람들을 괴롭히다니... 그의 영혼이야말로 가장 불쌍한 영혼일 것이다.

 

더 기가 찬 것은 그에게 빌붙어 정신 못 차리는 인간들이다. 눈이 멀어 고통 중에 있음에도 총 한 자루에 빌붙어 떡고물이라도 받아먹으려 하면서 타인에게는 온갖 폭력을 휘두르는 불쌍한 군상들의 모습이다.

 

같은 조건에서 좀 더 유리한 것을 가지게 되었다면 그것으로 타인에 대한 책임이 생겼다는 것이다. 이것을 책임이 아니라 권한이 생긴 것으로 생각한다면 그 사회의 불행이 시작된다.

 

근대 이후 인류의 역사는 권한을 책임으로 바꾸려는 대중들과 책임을 권한으로 가지려는 고위층과의 싸움의 역사가 아닐까? 

 

결국 더 이상보다 못한 눈이 멀쩡한 의사 아내의 지휘 아래 사람들은 그들의 폭력을 그들에게 되돌려 준다.

 

그리고 갇혀 있던 수용소를 탈출한 그들에게 펼쳐진 세상은 온통 눈먼 자들의 혼란한 세상이었다. 같은 처지에 협력을 하는 것이 아니라 원시적 본능에 따라 살고 있는 불쌍한 인간 세상이었다.

 

그러나 얼마 뒤 갑자기 바이러스가 소멸해 버렸다. 그리고 사람들이 시력을 되찾게 된다. 과연 그들은 눈을 뜨게 되었을 때 눈이 멀었던 시간들을 어떻게 기억하게 될까?

 

우리는 지금 21 세기를 살고 있다. 단군 이래 가장 번영한 시대를 살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과연 똑바로 살고 있는 것일까? 과연 우리는 멀쩡히 눈을 뜨고 살고 있는 것일까?

 

이 번영의 시대를 지속하고 발전시킬 힘이 우리에게 있는가? 그런 사람을 보는 눈이 우리에게 있는가? 혹시 엉뚱한 사람을 그런 사람이라고 착각하고 있지는 않는가?

 

혹시 총 한 자루에 기생하며 살고 있거나 또는 그런 자들을 올바로 보지 못하고 속으며 살고 있지는 않은가? 혹시 잘못된 프레임에 갇혀 살고 있지는 않는가?

 

책임이 권한이 되어버린 세상이다. 진실을 보기도 진실을 말하기도 힘든 세상이다. 그렇기에 더  눈을 부릅뜨고 살아야 하는 세상이다.

반응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