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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발장을 변화시킨 건
자베르 경감의 정의가 아니라
미리엘 신부의 사랑이었다.
그렇다.
장발장은 미리엘 신부의 사랑 앞에 깨어지고 변화되었다.
미리엘 신부의 사랑이 아니었다면
장발장은 죽을 때까지 사회를 원망하고 죄 없는 주변 사람들을 향해 복수의 칼을 겨누었을 것이다.
왜 그래야 하는지 자신도 모른 채.
아마 그러다 자베르 경감에게 붙잡혀 평생을 감옥에서 보내야 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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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베르 경감은 정의의 대변자다.
그에게 있어 법은 정의이고, 정의는 반드시 수호되어야 할 신념이었다.
그는 뇌물을 받지도 않았고, 불공평하지도 않았다.
그는 잘못한 것이 없었다.
그는 정의로웠다.
다만, 자베르 경감에게는 미리엘 신부의 사랑이 없었을 뿐이었다.
사람을 변화시키는 건 사랑이다.
만약 정의가, 종교적 용어로는 율법이 사람을 변화시키고 사회를 정화할 수 있다면
굳이 예수가, 석가가, 공자가 세상에 올 필요는 없었을 것이다.
군대만 있으면 될 일이고
가장 이상적인 정치 형태는 독재체제가 될 것이다.
그러므로 작금의 정치인들은 모두 틀렸다.
그들은 표현이 다를 뿐 모두가 정의를 외치고 있다.
진보든 보수든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라.
사랑은 없고 그저 정의만 외치고 있다.
사랑의 바탕이 없는 정의는 위험하다.
정의 없는 사랑은 나약하다.
그러나
차라리 나는 나약함을 택하겠다.
그곳이 좀 더 사람 사는 세상이 될 것이라 믿기 때문이다.
다시 써 본다.
장발장을 변화시킨 결정적 요소는
자베르 경감의 정의가 아니라
미리엘 신부의 사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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