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로 슬픔도 힘이 된다. 그러나 지금 슬픔의 감정이 너무 넘친다면 슬픔의 감정을 떨쳐버리는 것도 필요하다. 슬픔을 느끼는 것은 아주 소중하고 중요한 것이지만 그 슬픔의 감정들이 자신을 지배하는 것은 경계해야 한다."
- 오늘을 사는 지혜, 박정수 엮음 -
만약 우리가 슬픔을 못 느낀다면 어떻게 될까? 슬픔을 모르니 매일이 기쁠까? 기쁘진 않더라도 매일이 좀 더 활기차게 될까? 그렇진 않을 것이다. 그러면 조금이라도 더 우리 삶에 더 좋을까? 그것도 아니라 생각한다.
우리가 슬픔을 모른다면 그만큼 공감 능력도 떨어지지 않을까? 무엇이든 자신이 경험한 것은 더 감정이입이 되고 공감이 되는 법이다. 슬픔을 모른다면 어떻게 타인의 고통이나 사정에 공감할 수 있겠는가? 타인의 고통이나 아픔은 그저 하나의 현상으로만 생각될 뿐 그에 대한 공감은 되지 않을 것이다. 공감은 되더라도 그 아픔과 힘듬이 느껴지지 않을 것이다.
슬픔은 타인을 위해서만이 아니고 자신을 위해서도 필요하다. 큰 일을 겪고 슬픔을 느끼지 못한다면 그 일이 되풀이될 수 있다. 슬픔과 회한이 있기에 같은 일을 반복하지 않으려 다짐하게 된다.
그러나 슬픔에 매몰되는 것은 매우 위험하다. 슬픔은 감정의 일이라 자칫하면 그 감정에 빠질 수 있다. 빠져서 헤어 나오지 못할 수가 있다. 슬픔을 바라는 사람은 없지만 슬픔에 스스로 갇히는 사람은 간혹 있다. 아니 누구나 그럴 때가 있다. 그렇게 되면 슬픔은 그를 잡아먹고 파괴하고 만다.
오르페우스가 아내를 지하세계에서 구해오지 못했음을 자책하면서 슬픔에 빠져 있다가 결국 디오니소스 여사제들에게 죽임을 당하고 말았다. 나르시스는 물속의 인물과 사랑을 나눌 수없음에 슬퍼하다가 수선화가 되고 말았다.
그러면 어디까지만 슬퍼해야 할까? 과연 그럴 수나 있을까?
그건 스스로 알 수 있다. 슬픔에 빠져서 자신이 허우적거리고 있는지는 스스로 알 수 있다. 주변 사람으로부터 알 수도 있다. 그래서 솔직해져야 한다.
자신의 평가도 주변의 평가도 스스로에게 솔직해야 받아들일 수 있다. 솔직하게 스스로를 바라보아야 한다.
정말로 슬퍼하고 있는지, 아니면 슬픔을 즐기고 있는지...
정말로 슬프면 그 슬픔을 극복하기 위해 힘을 쓴다. 힘을 쓰지 않는 슬픔은 감상일 뿐이다.
슬퍼하자. 그러나 슬픔에 매몰되지는 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