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년 7월 서울의 성수대교에서 중학생 2명이 강으로 뛰어내리는 일이 있었다.
그 이유가 무엇이었는지 아는가? 권태였다.
밤 10경 서로 친구들인 중학생 6명이 성수대교를 걷다가 다리에서 뛰어내리면 재미있겠다고 서로 이야기하다가 그중 한 명이 진짜로 뛰어내렸다. 그리고 뒤를 이어 또 한 명이 뛰어내렸다.
첫 번째 뛰어내린 학생은 무사히 구조되었으나 두 번째 뛰어내린 학생은 끝내 숨지고 말았다.
경찰 진술에서 구조된 학생에게 왜 뛰어내렸냐고 묻자 대답이 가관이었다.
집에서 학교로 또 학교에서 집으로, 그리고 집, 학교, pc방의 반복되는 일상이 지겨워서였다는 것이다. 권태스러웠다는 이야기다.
권태
권태는 누구에게나 올 수 있다. 권태를 못 느끼는 사람도 있으나 대부분 인생의 어느 시점에서 어느 시간 동안 권태를 느낄 수 있다. 권태를 느끼는 시간은 개인에 따라 길 수도 있고 짧을 수도 있다. 그러나 대부분 권태를 느끼면서도 일상을 살아낸다.
권태는 왜 느끼는가?
아마도 무언가 자신이 할 일이 없을 때 좀 더 정확히는 자신의 일상에서 의미를 느끼지 못하기 때문이다. 아무런 의미 없는 일상을 견디기란 참 힘들다. 일상의 매 순간이 의미로 가득 차 있지는 않지만, 그리고 자신의 일상에서 큰 의미를 느끼지 못한다 해도 대부분의 사람은 자기가 미처 보지 못하는 의미가 있을 수 있다고 어렴풋이 느낀다. 그래서 지루한 일상을 견뎌낸다.
일종의 책임감도 권태를 이기게 만든다. 다람쥐 쳇바퀴 도는 직장 생활에 큰 의미를 느끼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가족에 대한 책임감으로 권태를 견디고 매일 챗바퀴를 돈다.
그러나 의미도 책임감도 없다면 권태를 이기기 힘들다. 그래서 권태는 생각 외로 강한 힘을 가지고 있다.
* 지루함은 모든 악덕의 뿌리다. - 키에르케고르
* 인생은 식욕과 성욕과 권태의 드라마다. - 쇼펜하우어
* 존재의 의미에 대해 끊임없이 염려하는 현존재로서의 인간이 가지는 가장 근본적인 기분 - 하이데거
권태를 느끼자
사실 권태는 살아있다는 증거다. 살아 있기에 권태를 느낄 수 있다.
그런데 묘하게도 권태는 자칫 죽음으로 인간을 내 몰 수도 있다. 살아 있음의 증거인 권태가 죽음의 인도자가 될 수 있는 것이다.
권태를 어떻게 극복해야 할까? 솔직히 잘 모르겠다. 중요한 건 권태가 찾아오지 못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찾아오더라도 너무 오래 있어 나를 얽매이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같은 상황에서 누구는 권태롭다고 하고 누구는 평온을 즐긴다 할 수 있다. 실제로 대기권에서 수개월을 지낸 소련의 우주비행사는 좁은 공간에서 매일 같은 시간이 흐르는 우주선에서의 생활이 권태롭다고 했고, 같은 조건에서 캐나다의 우주비행사는 권태를 느끼지 못한다 했다.
때로 권태를 막을 수 없다면 권태 속에 숨겨 있는 평온을 찾아볼 일이다. 어쩌면 일상의 권태로 인해 삶의 평온과 살아 있음의 진정한 자각이 일어날지도 모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