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에도 많은 무술 도장들이 있다. 종합격투기의 흥행으로 무술에 대한 환상이 벗겨지기는 했으나 그건 주로 중국 무술에 대해 그렇고 다른 나라의 무술은 아직 건재하다. 우리나라 역시 마찬가지다. 그중에 전통 무술이라 하는 도장들도 많이 있다.
그러나 솔직히 우리나라에서 전통무술이라 하는 무술 중 진짜 전통 무술이 어떤 것인지는 알 수 없다. 전란과 일제강점기를 거치며 많은 전통무술이 사라졌을 것이다. 거기에 문을 숭상하고 중앙집권이 잘된 사회 구조라 민간에서 무술이 발전하기가 쉽지 않았을 것으로 보인다. 그럼에도 전통무술이라 하는 몇몇의 무술을 살펴본다.
택견
현재 전통 무술이라 하는 것들 중에 진짜 전통 무술로 인정받는 것은 거의 없다고 봐야 한다. 그러나 택견은 누구나 인정하는 우리의 전통 무술로 자리매김했다. 택견은 누가 봐도 다른 나라 무술과는 확연히 다르다. 택견의 몸짓은 우리나라 춤사위와도 비슷하다. 몸짓이 우리나라 사람들의 몸짓이니 전통 무술이라는 것을 한눈에 알 수 있다.
동작의 독특성
대부분의 무술은 어느 나라 무술이건 동작에 비슷한 면이 많다. 사실 같은 사람이 하는 행동이니 크게 다를 것이 없다. 그러나 택견은 우리나라 사람이 아니라 해도 택견을 보면 그 어떤 무술과도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손동작 발동작 자체는 비슷할 것이다. 주먹 지르기나 도끼질 같이 내려치는 동작 또는 앞차기나 뒤차기 같은 동작들이 달라봐야 얼마나 다를 수 있겠는가? 인간이라는 같은 신체 조건과 관절의 위치나 각도가 같은데 전혀 다른 손기술이나 발기술이 존재할리가 없다.
그럼에도 택견을 전통 무술이라 하는 이유는 주먹이나 발을 쓰기 위한 몸동작이 그 어떤 무술과도 다르기 때문이다. 허리나 단전 같은 몸의 중심을 이용하여 손과 발을 사용한다는 원리 자체는 같으나 그 몸짓은 완전히 다르다. 덩실덩실 춤을 추는 듯한 몸짓은 우리네 전통 춤사위와 같다.
그렇게 덩실덩실하면서 이른바 품밟기를 한다. 그러다 어느 순간 손과 발이 잽싸게 상대를 공격한다. 이런 형태는 어느 무술에서도 볼 수 없는 형태다. 그리고 발차기도 주로 상대를 밀듯이 차는 것으로 알고 있다. 이는 상대에게 충격을 주되 상하게는 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이런 정신의 무도가 어디 있겠는가?
그리고 태권도나 가라테 또는 무에타이 같이 직선을 추구하지 않고 곡선을 추구하는 차이점도 확연하게 알 수 있다. 품밟기부터 곡선의 움직임으로 시작한다. 그 동작 자체가 매우 우아하여 춤사위와도 같다. 80년대 중반에 tv 뉴스를 통해 신한승 선생의 택견을 소개하는 것을 보고 그 몸짓에 놀란 기억이 난다. 택견이 아직 존재한다는 것도 놀라웠고 그 동작의 특수성과 전통의 몸짓인 것에 또 놀랐었다.
태견
90년대 중반에 세검정에서 한풀 김정윤 선생을 만난 적이 있다. 처음 듣는 생소한 이름의 무술이라 궁금하여 문의차 방문했었다. 김정윤 선생은 우리나라 합기도 도주이신 고 최용술(1899~1986) 선생의 1세대 제자로 수제자 급이었던 분이다. 이 분이 최용술 도주의 술기를 좀 더 체계화하여 '한풀'이라는 새로운 무예로 만들었다.
이분은 한국 무술의 뿌리를 찾는 작업에도 관심이 많으셨던 듯하다. 택견 고수이신 고 송덕기 옹(1893~1987)이 작고하시기 전에 옹을 찾아가 책만이 아니라 비디오 동영상으로 택견을 남겨야 함을 설득하여 비디오로도 제작하신 것으로 알고 있다. 김정윤 선생은 택견을 태견이라 부른다. 그분이 제작한 한풀 교본을 판매하는 밝터 게시판에 보면 송덕기 옹의 택견 교본도 판매가 되고 있는 데 '태견'이라 이름 지어져 있다.
김정윤 선생이 택견을 연구한 건 최용술 도주가 일본인 스승에게 들은 말 때문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덕암 최용술 선생이 일본 야마나시현(山梨縣)에 있는 신슈 산(信州山)에서 원정의(다케다 소카쿠) 선생으로부터 데고이(야와라 쥬쥬쯔)를 배울 때, 원정의 선생이 덕암 선생에게 "데코이는 본래 너의 나라 것이었다."라는 말을 해 주었다고 했다. 이 말을 근거로, 태견과 데고이의 역사와 기술을 연관시켜 연구하는 과정에서 태견에 숨겨져 있던 많은 부분들을 밝혀낼 수 있었다.'
위 글은 밝터 홈페이지에 있는 김정윤 선생이 출간한 '태견' 책 소개 글이다. 선생은 최용술 도주의 이야기를 듣고 데코이와 택견의 상관관계를 밝히려 노력한 것 같다. 그러고 보니 택견과 데코이가 발음이 비슷한 것도 같다.
유네스코 등재
택견은 무술 중에서는 가장 먼저 유네스코 무형 문화재로 등재된 것으로 알고 있다. 그때가 2011년이다. 중국이 자랑하는 태극권은 준비한 지 10년도 더 걸려서 간신히 2020년 12월에 이르러서야 등재됐다. 이것만 봐도 택견의 전통문화와 무술로서의 독특성이 인정되었다 할 수 있다.
마치며
나는 택견을 배워 본 적이 없다. 무술 사가도 아니다. 다만 택견이란 무술이 전통 무술임이 확실하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나이가 많기는 하지만 건강 차원에서라도 기회가 되면 배워보고 싶은 마음이 아직 있다. 택견은 그 동작의 독특성으로 인해 무술뿐 아니라 문화적으로도 보존의 가치가 높다고 생각한다. 그렇기 때문에 유네스코 무형문화재로도 등재가 가능했던 것이리라.
일제 때 거의 명맥이 끊어졌으나 고 송덕기 옹과 고 신한승 옹 같은 분들로 인해 명맥이 이어졌고 지금은 전국에 많은 전수관이 있다. 2015년 자료로는 147개의 전수관이 전국 곳곳에서 문하생들을 지도하고 있었다고 한다.
앞으로도 더욱 발전하기 바라고 택견과 같은 숨겨진 전통 무술이 세상으로 나와 대중화되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