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에 보면 야곱과 에서가 만나는 장면이 나온다.
참고적으로 이 두 사람은 친형제이지만 동생 야곱의 잔머리에 에서가 분노하여 야곱을 죽이려고까지 한 적이 있었다. 그래서 야곱은 도망가서 20년 만에 둘은 다시 만나게 된다. 야곱은 에서가 자기를 만나면 죽일 것이라 생각하고 겁을 낸다. 그러나 정작 에서는 야곱을 보자 반갑게 맞이해 준다. 야곱을 만난 에서의 모습에서 과거의 앙금은 찾아볼 수가 없다. 둘의 관계가 회복된 것이다.
다윗왕은 노년에 아들 압살롬의 반역으로 도망자 신세가 된다. 그러나 그를 따르는 신하들의 도움으로 다시 왕궁으로 들어간다. 왕위의 회복이다.
간질병 걸린 아들을 둔 아버지는 예수에게 매달려 아들을 살려달라고 간청한다. 나병에 걸린 사람들도 예수에게 매달려 간청한다. 심지어 자기 오빠가 죽자 예수에게 매달려 간청한다. 그리고 그들은 병에서 나았고 죽음에서 살아났다. 건강의 회복이고 생명의 회복이다. 예수님도 죽음에서 다시 살아나셨다. 이 역시 생명의 회복이다.
종교적인 은혜가 있다. 건강의 은혜가 있고 재물의 은혜가 있고 관계의 은혜가 있다. 이 모두는 결국 회복의 은혜로 귀결된다.
회복이란 무엇인가?
평균의 보존이고 질량의 보존이고 정반합이고 공의가 아니겠는가? 이지러진 것이 메워져 평균을 이루고, 빠져버린 질량이 다른 곳에 옮겨져 총량이 보존되고, 정과 반의 대립에 합이 생겨 균형을 이루고 그렇게 공의가 이루어지는 것 아닐까?
회복은 이렇게 물리적 세계에서도 일어나고 사회적 현상에서도 일어나는 일이다.
그중에서도 가장 큰 회복의 은혜는 관계의 회복이다. 건강하게 살든 병약하게 살든 인간은 어차피 죽는다. 건강의 회복, 재물의 회복보다 관계의 회복이 더 중요한 것 같다.
살아가면서 주변 사람들과 알게 모르게 관계가 깨어질 수 없다. 예수님은 깨어진 인간과의 관계 회복을 위해 내려오셨다. 그런데 정작 우리 인간들은 관계 회복에 힘을 쏟고 있지 않다. 관계 회복이야 말로 우리가 세상에서 살아가면서 힘을 쏟아야 할 일이다. 건강도 중요하고 재물도 중요하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관계의 문제다. 관계가 깨어지면 인생이 의미 없어진다. 부모는 자식을 위해 목숨도 버린다. 이렇게 관계는 죽음도 뛰어넘을 수 있다. 그만큼 관계가 중요하다.
무엇보다 관계의 회복에 힘 쏟아야 한다. 그것이 후회 없는 삶이다. 사람이 죽을 때 후회하는 것은 관계의 문제이지 건강이나 재물의 문제가 아니라 한다.
지금 우리나라도 관계의 문제를 겪고 있다. 세대 간의 관계, 좌우의 관계, 가족의 관계, 외교의 관계 등등. 개인과 나라에 회복의 은혜가 가득하기를 바라본다.